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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xter』 관람 소감 –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괴물이 된 남자

해피해-5 2025. 6. 16. 20:39

 

『Dexter』 관람 소감 –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괴물이 된 남자

살인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은 드물지 않다. 그러나 『Dexter』처럼 시청자로 하여금 그 살인자에게 진심으로 감정이입하게 만든 드라마는 흔치 않다. 이 시리즈는 단순한 범죄 스릴러나 서스펜스물이 아니다. 그것은 선과 악, 본성과 선택, 윤리와 생존의 경계를 끊임없이 밀고 당기며,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질문에 도달한다. “괴물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라는 오래된 물음 앞에서 『Dexter』는 자신만의 대답을 내놓는다. 바로,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괴물이 되었다”는 덱스터 모건(Dexter Morgan)의 고백이다.

 

 

 

시즌 드라마 텍스터 포스터 이미지

 

 

 

 

 

1. “어둠의 탑승자” – 이중성의 미학

덱스터는 낮에는 마이애미 경찰국의 혈흔 분석가로, 밤에는 연쇄살인범으로 살아간다. 그는 타인의 피를 분석하고, 범죄자를 쫓는 동시에 자신의 손으로 범죄자를 없앤다. 이 극단적인 이중성은 단순한 설정 이상의 철학적 장치를 형성한다. 그는 ‘코드(Code of Harry)’에 따라 오직 살인자만을 죽이며, 사회정의와 자기 욕망의 균형을 맞추려 한다.

그러나 덱스터의 코드는 점차 모호해진다. 시즌이 거듭될수록 그가 단순히 충동을 억누르기 위해 규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정당성을 가장한 자기중심적 결정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이 괴물임을 자각하면서도, 동시에 인간이 되고 싶어 한다. 이 괴물성과 인간성의 끊임없는 경계야말로 『Dexter』의 진짜 긴장감이며, 우리가 이 캐릭터를 쉽게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이유다.

2. “나는 감정을 흉내 낼 수 있어” – 정체성의 딜레마

덱스터는 초반 내내 자신을 “감정이 없는 존재”라 규정한다. 그는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고, 감정을 연기해야 하는 불편함을 내레이션을 통해 고백한다. 그러나 그가 주변 인물들과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 특히 여동생 데브라, 아내 리타, 그리고 아들 해리슨과의 관계를 통해 그 규정은 점점 무너진다.

덱스터가 보여주는 사랑은 어설프고 왜곡돼 있지만, 진심이 담겨 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이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품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감수한다. 시즌 4에서 리타를 잃은 충격은 그가 더 이상 단순한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상실을 인식하고 아파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드러낸 결정적 순간이다.

3. 윤리와 폭력 – ‘코드’라는 자가당착

『Dexter』는 “누가 악인을 심판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하여 한 개인의 독단적 정의를 통해 답한다. 이 정의는 ‘코드’라는 체계로 보호받는 듯 보이나, 결국 그것은 덱스터 자신의 폭력성을 정당화하는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법망을 피해 간 범죄자들을 처단하며 일종의 대리만족을 제공하지만, 그의 선택은 항상 옳지 않다.

이러한 모순은 시즌 후반부로 갈수록 심화된다. 특히 시즌 8과 리바이벌 시리즈 『Dexter: New Blood』에서는 그 스스로 코드의 무력함을 인식하고, 점차 그것을 넘어서려 한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드라마는 의외로 정직하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살인이 결국 또 다른 악이라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4. 장르적 탁월함 – 스릴러, 드라마, 심리극의 경계 허물기

『Dexter』는 장르적으로도 실험적이고 야심 찬 드라마다. 초반에는 범죄 스릴러의 공식을 따르지만, 점차 심리극의 면모를 강화하며, 가족드라마와 사회극의 요소까지 포괄한다. 특히 시즌 4는 TV 드라마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서사 중 하나로 꼽히며, 트리니티 킬러는 덱스터의 거울 같은 존재로 기능한다.

또한 이 작품은 끊임없이 내레이션을 활용하여 주인공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관객은 덱스터의 목소리를 통해 그의 ‘가면 뒤의 진실’을 듣는다. 이는 일종의 심리적 일기이자 자백이며, 덱스터를 공감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장치다.

5. 결말과 유산 – 인간의 얼굴을 한 괴물, 혹은 괴물의 얼굴을 한 인간

『Dexter』의 오리지널 결말(시즌 8)은 많은 시청자들에게 실망을 안겨줬다. 그러나 2021년 리바이벌 시리즈 『Dexter: New Blood』는 그 서사의 마무리를 훨씬 더 정직하게 다듬는다. 새로운 관계 속에서 덱스터는 여전히 코드와 감정 사이에서 갈등하고, 결국 자신의 괴물성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는 진실을 마주한다.

아들 해리슨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는 결말은 덱스터의 서사가 시작된 자리—폭력과 상실—에서 닫히는 셈이며, 그 자체로 윤리적 폐쇄이자 비극적 구원이다.

맺음말

『Dexter』는 단순한 범죄 드라마가 아니라, 윤리적 질문을 품은 존재론적 드라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나의 충동을 어떻게 다룰 수 있는가?”, “선과 악의 기준은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거대한 질문이 이 시리즈의 심장부에 놓여 있다.

괴물은 언제나 멀리 있지 않다. 괴물은 우리 안에 있다. 그리고 『Dexter』는 그 괴물과 손을 잡고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거칠고 충격적이지만 솔직한 해답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