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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마더》(2023) 감상평

 

 

 

 

 

내 이름은 마더 포스터 이미지

 

 

 

— 모성의 야성, 그리고 액션의 본능

2023년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공개된 영화 《내 이름은 마더》(The Mother)는 제니퍼 로페즈가 주연을 맡은 액션 스릴러로, 할리우드가 오랫동안 소비해 온 ‘모성 서사’와 ‘여성 액션 히어로’의 코드를 결합하여 다시 꺼내든 작품이다. 감독 니키 카로(Niki Caro)는 《뮬란》(2020)과 《웨일 라이더》(2002) 등에서 보여주었던 여성 주체의 성장 서사를 이번 작품에서도 고스란히 끌어오며, 모성애를 중심에 두고 이를 강력한 생존 액션 서사로 전환시킨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단순한 ‘딸을 위한 복수극’이라기보다, ‘전사’로 훈련되고 살아온 한 여성이 생물학적 모성의 감정과 본능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는지를 묻는 내면적 탐색이기도 하다. 얼핏 보기에 폭력으로 점철된 액션 스릴러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엄마란 누구인가?’라는 다층적인 질문이 깔려 있다.


모성, 본능, 생존: 서사의 세 겹

영화는 ‘마더’라는 이름조차 명확하지 않은 주인공이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미군 특수요원 출신인 그녀는 범죄 조직에 깊이 연루되었고, 거기서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조직의 보스들이 연루된 거대한 음모 속에서 배신당하고, 결국 아이를 낳은 뒤 아이와 격리된다.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녀는 ‘엄마’이지만,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조건에 놓인 것이다.

이후 12년이 흘러, 납치된 딸을 구하기 위해 '마더'는 은둔을 깨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 구조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할리우드 액션 장르의 틀 — 전직 요원, 유괴된 자녀, 복수 — 에 충실하지만, 《내 이름은 마더》는 그 서사의 껍질 너머에 질문을 심는다. 아이를 위한 폭력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유전적 모성이 없는 상황에서 ‘모’가 되는 자격은 어디서 오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가 '날 모르는 엄마'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제니퍼 로페즈의 육체와 얼굴

배우 제니퍼 로페즈는 이 영화의 핵심적 에너지다. 그는 이제껏 뮤지션이자 배우로서 무수한 변신을 보여줬지만, 《내 이름은 마더》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매우 상반된다. 이는 전적으로 육체성에 의존하는 액션 캐릭터이며, 전사의 이미지에 육박하는 야성을 보여준다. 헬기 추격전, 설원 위의 저격 전, 육탄전까지 — 그녀는 전형적인 액션 히어로의 서사를 여배우의 신체로 온전히 구현해 낸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로페즈의 ‘섹시한 액션’을 소비하는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그는 단 한순간도 꾸미지 않고,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로 극을 이끌어간다. 그 냉담함 속에는 두려움과 후회, 분노와 절망이 복합적으로 엉켜 있다. 《내 이름은 마더》는 로페즈의 커리어에 있어 매우 이례적인 작품이자, 그녀가 진짜 배우로서 보여줄 수 있는 깊이를 증명해 보인 예다.


액션의 문법: 현실성과 잔혹성 사이

니키 카로 감독은 기존 여성 액션 영화들이 보여준 과도한 슬로모션이나 시네마틱 한 아름다움을 배제하고, 대신 ‘동물적 본능’에 가까운 리얼한 액션을 선택했다. 《존 윅》처럼 계산된 폭력이 아니라, 즉흥적이고 생존에 가까운 액션. 무기를 사용하는 방식이나 도심을 벗어난 설원 액션은 오히려 《레버넌트》《윈드 리버》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후반부의 설산 액션 시퀀스는 이 영화의 백미다. 하얗게 눈 덮인 숲 속에서 펼쳐지는 저격 전은 배경의 정적과 인물의 긴장감을 극대화시키며, 마치 모성과 죽음이 동시에 맞붙는 한 판 대결처럼 보인다. 아이를 지키기 위해 겨눈 총, 그러나 아이 앞에서는 차마 방아쇠를 당길 수 없는 그 복합적인 정서가, 극적 리듬을 살려낸다.


이 영화가 묻는 것: ‘엄마’라는 존재의 본질

《내 이름은 마더》는 모성 신화를 강화하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해체한다. ‘엄마라면 이래야 한다’는 도식적 인식에 반기를 든다. 마더는 엄밀히 말하면 ‘나쁜 엄마’다. 아이를 떠났고, 아이와의 관계를 스스로 끊었으며, 다시 만난 순간조차 아이에게 감정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그러나 영화는 바로 그 실패에서 진짜 모성을 길어낸다.

이는 전통적인 할리우드 가족 서사와 충돌한다. 가족은 무조건적인 이해와 용서의 공동체가 아니라, 선택과 책임의 결과물임을 보여준다. 피보다 중요한 것은 함께 쌓아 올린 시간과 신뢰, 그리고 서로를 위한 희생이다. 마더는 자신이 키우지 않은 아이를 위해 목숨을 건다. 그 동기는 생물학적 본능이라기보다, 인간으로서 갖는 최소한의 책임 의식에서 비롯된다.


마무리: 정제된 스릴러이자, 감정적 리더십의 복원

《내 이름은 마더》는 넷플릭스가 그간 선보인 B급 액션과는 결을 달리한다. 단순한 복수극으로만 보기엔 감정의 밀도가 깊고, 캐릭터의 층위가 입체적이다. 액션은 그 칠 돼, 감정은 억제되어 있다. 그리고 그 억제된 감정이 마지막 장면에서 폭발할 때, 관객은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이 영화가 말하려던 것은 ‘엄마의 위대함’이 아니라, ‘엄마라는 존재도 결국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진실이다.

이 영화는 장르적으로는 깔끔한 스릴러이며, 감정적으로는 자기 구속에서 해방된 한 여성의 이야기다. 엄마라는 타이틀 아래 가려졌던 욕망, 공포, 후회, 본능이 액션이라는 외피 속에서 터져 나온다. 이는 여성 서사의 확장인 동시에, 할리우드 액션 장르의 새로운 지형도다.

“모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것이다.”